경우회 제24대 중앙회장 선거가 끝난 지도 2개월 이상이 지났고, 오는 11월이면 경우회 창립 제61주년을 맞이한다.
신임 집행부 출범과, 창설 61주년을 맞아 경우의 한사람으로서, 우리 경우조직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면서, 지난 60년의 경우회 역사를 통해, 경우회장 선거를 어떻게 치렀는지, 그 발자취를 한번 더듬어 보고자 한다.
경우회 중앙회장 선출은 初代부터 15대까지는 추대로 이루어졌으며, 2002년 16대부터 지난 5월 제24대까지 9회에 걸쳐 선거를 치루면서, 경선 6회, 단독후보 3회로 대의원 총회에서 선출되었다. <아래 도표 참조>
지난 역대 경우회장을 선출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初代부터 15代까지는 형식은 추대 방식을 취했으나 실질적으로는 고위층으로부터 낙점되어 내려온 고위직 출신을 대의원 총회에서 박수로 선출하는 것이 관행으로 내려져 왔다.
이렇게 선출된 회장은 재정적 뒷받침이 없는 상태에서 自費 또는 기부금으로 경우회를 운영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때까지만 해도 현직은 물론이고, 일반 사회에서도 ‘경우회’란 이름도, 관심도, 없었고, 재정적 수입원은 경우신문 구독료가 유일했으며, 임원으로 참여하려는 사람도 없는 시절이었기에 추대된 회장이 임원을 모집하는 형태로 간신히 집행부를 구성하여 어렵게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으로 운영된 것이 당시 현실이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경우회장을 선거로 선출하게 된 것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1999년 제15대 이균범 회장이 추대되어 당시 경찰청장의 감독을 받도록 되어 있는 경우회법을 2000년 감독을 받지 않는 경우회법으로 개정하였고, 기흥CC 소송 건도 합의가 이루어져 故 이상달 측으로부터 받은 60억+20억 총 80억 원의 재정을 확보하게 되자, 경우회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게 되었고, 이균범 회장도 3년의 임기 동안 경우회를 안정적으로 이끌면서 재정적 뒷받침도 이루는 성과를 거두게 되자, 2002년 제16대 경우회장 선거부터 “주권을 회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취지에 맞게 민주적 선거방식을 통하여 대의원 총회에서 직접 선출하자”고 천명한 후, 경우회 역사상 최초로 경선을 실시하였으나, 본인은 연임에 성공하지 못하고 낙선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후 제16대 이후부터 자연스럽게 선거에 의한 임원 선출이 잘 이루어져 오다가 제21대 선거에서 구재태 前 회장이 정관을 개정하여 3선 연임의 길을 열어 놓고 본인이 3선을 한 다음, 제22대 때는 4선 연임 정관을 개정하여 선거를 시행하므로 써 대내외에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구재태 회장은 4선 불출마)
이렇게 선거와 추천에 의한 회장 선출 방법은 2가지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 하겠으나, 어떻든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는 선거를 통하여 선출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앞으로 바람직한 회장 선출은 警友會法에 명시된 것과 같이 경우회는 사무총장 체제로 운영하게 되어 있으므로, 회장은 추대 방식으로 선출하고, 사무총장을 선거에 의해 선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하겠다. 끝으로 급변하는 시대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조직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우회가 변해야 한다.
경우회는 너무 고령화되어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젊은 경우회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져야 하며, 혁신위원회가 그 방안을 찾는데 큰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고무적인 현상은 지난 3월에 선출된 지역경우회장 연령대가 1950년대 생이 주축을 이루고 있으므로, 젊다는 것은 진취적이며 개혁적 마인드를 가진 올바른 사고(思考)의 소유자란 것이므로, 이들에게 큰 기대를 가져 본다.
이제 경우회의 미래 세대인 50년대 출생 지역회장들이 새롭게 떠오르는 경우회의 새벽 태양이다.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